관광 첫날 오전(쳬첸셩)
날씨는 3~4일내에 비가 오려는지 옅은 안개에 아침 기온은 그리 덥지 않았다. 호텔을 8시 30분 가량 출발하여 자금성에 도착 하였다. 자금성의 중국식 발음은 쳬첸성이다
중국은 세계에서 세 번째로 큰 나라로 960만 ㎢의 대륙이며 13억의 대인구의 나라이며 모양은 장닭 모양이다. 한반도의 약 43배, 남한의 약 97배에 달하는 대륙, 장강이라 불리는 양쯔강의 길이는 무려 6400㎞, 황하강의 길이는 1200㎞, 여기에 장강과 황하강을 연결하는 운하를 건설 중이다. 이만하면 중국이란 나라가 정말 별개 아니라는 생각은 더 이상 할수 없다. 이 넓디넓은 중국의 수도에 머물렀다
자금성, 이어지는 가이드의 설명을 들으면서 저멀리 바라본 천안문이 작게만 보였지만 10여분을 걸어서 도착한 자금성의 규모는 적지 않았다.
옥황상제보다 한칸 적은 9999칸의 구중궁궐, "자주색 성으로 인민이 들어갈 수 없는 성, 그래서 붙여진 이름 자금성"이라는 노가이드이 설명이 있었지만, 사실은
자금(紫禁)이란 북두성(北斗星)의 북쪽에 위치한 자금성이 천자가 거처하는 곳이라는 데서 유래된 말로, 베이징의 내성(內城) 중앙에 위치한다. 1407년 명나라의 영락제(永樂帝)가 난징[南京]에서 베이징으로 천도하기 시작할 때부터 건립하여 1420년에 완성하였다. 명(明)·청(淸)시대의 궁전 자금성
하여간 황제의 색인 노란색이 어울어진 성을 보고 있노라면 아름다움보다는 규모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좌측으로 보이는 인민대회당은 우리의 국회의사당과 같은 곳이나 규모에 있어서는 약 10배정도의 크기인것 같다.
광장 중앙 에는 모택동(마우쪄뚱)을 기념하는 비가 서있고 우측에는 국립 박물관과, 천안문 맞은편으로는 모택동의 시신이 안치된 기념관이 자리잡고 있다.
천안문 광장은 우리의 여의도 광장처럼 국가 행사가 행해지는 명소로 자리 잡고 있다. ‘허우’라는 동물이 성을 지키며, 모택동을 기념하여 대형 사진이 걸려 있는 천안문을 통과하면 1406년부터 건축한 자금성안으로 들어가게 된다.
자금성 안에 들어서면 ‘오문’을 비롯하여 또다시 여러개의 문을 통과하여야 황제의 자리에 가볼 수가 있다. 조금아쉬움이 있다면 황제가 있던 곳(영화에서 나오는 그곳)과 혜화전, 이런 중요한곳은 100년 만에 복구공사가 진행되고 있는 관계로 외형만 보고 돌아서야 했다.
자금성은 철저하게 풍수지리가 접목된 고전의 동양의 양식을 느낄 수 있도록 건축되었다. 입구로부터 역 “土”자 모양의 건축이며 성 앞 즉 南편의 “火” 의 기운을 성 뒤편 즉 北편의 “水”의 기운이 감당하도록 동산을 만들고 나무를 심었다. 사실상 성내에는 그 곳 외에는 풀 한포기도 자라지 못하게 축조 되었다. 그이유는 사각형(□)의 성안에 나무(木)이 자라면 困자가 되므로 성내에 곤란한 일거리들이 생길 것이라는 생각 때문에 나무가 자라지 못하게 한다
황제를 보호하기 위한 조치는 대단 하였다, 영화 황비홍에 나오는 그 자리 바닥 벽돌들이 들어 날리는 모습의 그 자리는 바닥에서 토굴을 뚤고 들어올것을 대비하여 약 7겹의 돌로 바닥을 하여 추정하여 약 10여m가 넘는 견고한 돌로 되어있다.
황제의 성 앞에는 인공 운하를 만들어 최종적으로 적의 침입을 저지하도록 하였으며, 이때 퍼낸 흙으로 뒤편의 동산을 만들었다. 황제를 보호하기 위한 조치로 또 한가지 예를 들면, 화장실이 없다는 것이다.
황제의 화장실은 고정적일 경우 피살의 위험성이 있어 아예 만들지 않았으며, 이동식으로 그때그때 해결하면서, 황제의 변은 의사들로부터 건강 검증의 시료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난방을 위한 인공 벽돌의 제작과장이나, 신혼 3일간만 사용하는 방 등, 황제의 위용에 맞게 어마어마한 권의의 상징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자금성에서는 대부분 사진을 많이 찍었다. 처음부터 한국에서는 못보던 웅장함에 놀라 쉴새 없이 샤터를 눌러 댔다.
자금성의 건축양식을 보면서 수년전 어느 학자가 한국의 건축양식과 중국의 건축 양식에 대한 비교를 하면서 한국 건축의 우수성을 논했던 것이 생각났다.
그러나 지금 나의 견해는 다르다. 자금성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우리의 경북궁의 아름다움 보다는 못하다, 그러나 그 크기는 비교할 수가 없다. 우리는 작은 땅에서 작은 건축물로 충분히 아름다운 궁궐을 축조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넓은 땅에 크게 궁궐을 만들면서 우리와 같이 아름답게 하기 보다는 풍수와 역학에 맞게 지었다. 어찌 보면 기와장 하나를 비교해 보더라도 우리의 것과 비교해서 그리 좋지 못하다고 할 수 있다만 그들은 우리와 같이 섬세한 문양의 기와장을 만들어도 쳐다보이지도 않는 곳에 있다. 오히려 그들은 멀리서 보기에 괜찮은 정도의 문양을 디자인 했다. 그 대신 그들은 눈에 보이고 손에 닿는 곳은 나름대로 섬세하게 꾸몄다. 아래의 그림을 보아도 알 수 있다.
기와로 빗물이 스며들지 않도록 기와를 자기처럼 유약을 입혀 구웠으며, 기와에 난 못 구멍의 작은 틈으로 물이 들어가지 않게 뚜껑을 만들어 덮었다.
또한 10여년이 걸쳐 40톤이 되는 돌을 자금성으로 옮겨 제작한 용의 조각도 섬세하게 잘 조각 되었고 지금까지 보존되었다.
그들은 이큰 돌을 옮기기 위해 봄부터 가을 까지 도랑을 파고 물을 채워 겨울에 얼음이 얼면 밀어서 옮기는 수고를 10여년을 했던 것이다.
다음호에 계속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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