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리의 발견/engrossing(마음을 빼앗는 - 여행)

[스크랩] Beijing tour 2(쳬첸성-후퉁)

Dr.Albert 2006. 10. 3. 06:21

관광 첫날 오전(쳬첸셩-후퉁)

이렇게 만들어진 자금성 의 내부를 사진으로나마 잠시 돌이켜 본다.





자금성을 돌아보고 내가 자주 들리던 인터넷의 블러그 “은혜(恩惠)” 님의 생각이 났다. “은혜” 님은 자신의 블러그를 ‘중국을 사랑하는 은혜’ 라고 머리글을 달아 놓으셨던 이유를 조금은 알것만 같았다.



자금성을 뒤로하고 자전거(인력거)투어를 시작했다. 자전거 뒤에 2명이 앉을 수 있도록 개조하여 중국의 역사적인 과거의 모습을 그대로 보전한 옛날의 못살던 거리 즉 “후퉁’(胡洞)”이라는 골목 동네를 를 한바퀴 돈다.



약 30분간 돌았는데 우리나라의 60년대 도시 골목의 모습과 흡사하였다. 그러나 이제 이골목도 역사속에 묻혀 버릴 전망이다. 전에 영화에도 등장 했던 “후퉁” 30여분 남짓 나와 함께 탄 숙란이의 쉴새없는 이야기를 듣다 보니 어느새 끝났다.

  인력거기사는 하루에 얼마나 벌까? 대부분 잘 벌어야 하루에 30~40 위안을 번다고 한다, 웬만한 거리의 요금이 1~2위안 이니, 20~30명을 날라야 한다, 그들은 점심으로 1위안(약 120원)짜리 도시락을 때우고 아침 6시부터 10시간 동안 패달을 밟아야  이돈을 번다. 한 달 내내 일해야 1000위안(12만원) 남짓 버는 것이다. 중국에서는 실업자가 할 수 있는 일이 이것이 최선일 수 있다. 그래서 중국은 국영기업 출신의 인력거꾼이 홍수를 이룬다고 한다

"좁은 뒷골목을 의미하는 후퉁은 칭기즈칸이 베이징을 정벌하면서부터 조성되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우물을 중심으로 형성된 후퉁의 어원은 몽골어로 우물을 뜻하는 ’후통(忽洞)’에서 유래했다는 게 일반적인 설명이다.

후퉁이 외국인 관광객들에게 인기가 높은 것은 다른 유적지들은 과거의 흔적을 화석처럼 간직하고 있는 반면 후퉁에 가면 그곳의 사람들과 만날 수 있고 그들의 생활을 들여다볼 수 있는 매력이 있기 때문이다. 베이징에 후퉁이 얼마나 되는지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이름을 가진 후퉁이 3천600개이고 이름 없는 후통은 소털처럼 많다(有名胡同三千六, 無名胡同似牛毛)’는 말처럼 시내 3환로(三環路) 안쪽에 널리 분포돼 있다."

동행한 일원중에 여자가 4명인데 세명은 원우이고 1명은 짝이 모자라서 숙란이 데리고 온 그의 친구였다. 네명 이어서 여자원우들끼리 몰려다닐 줄 알고 나는 예전 군대선배인 병훈 형님이 부탁도 했고 해서 승숙원우(평소에 형사라고 불러 왔음)를 챙겨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으나 여자들끼리 모여 다니지 않고 각각 흩어져 다녔다. 사실 그렇게 된 것이 숙란이 친구인 미자씨가 서먹서먹할 것 같아 숙란이가 늘 같이 다녔으나 유머가 풍부했던 병기 형님이 미자씨를 재미있게 대하면서 자연스레 우리와 좀더 친숙해 지고 어느새 보디가드처럼 또는 파트너가 되어버리는 바람에 숙란이는 해방이 됐고 신구와 함께 친구였기에 함께 다니게 됐고 사진 찍을 때도 자주 붙어 있었다, 사실 숙란은 말을 잘해 이야기를 많이 하기 때문에 들어주다 보면 시간도 잘 갔다, 승숙이 형수나 평강공주님은 연배가 비슷한 형님이 파트너가 되어 보호해 주게 되었다. 미자씨도 나중에는 나이가 같았던 친구인 신구가 챙기기 시작 했다. 이렇게 하여 여자원우들은 자연스레 동년배의 원우들이 한명씩 돌봐 주었다. 그 덕분에 20명이 늘 떨어지지 않고 뭉쳐서 무사히 잘 다니게 되었다.

  어째뜬 인력거 투어를 마치고 북한 대사관 직영 “해당화”라는 식당에서 점심 식사를 하였다.

 

북한 식사는 다음호에 계속 됩니다.............

출처 : 충대경영72기
글쓴이 : 武正(e-korean)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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